아쉬운 인생, 무서운 업보(가무치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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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인생, 무서운 업보
“법사님, 지는 죄(罪)라고는 모릅니더.
지는 지금꺼정 경찰서, 파출소도 한번 안 가본 사람입니더.
그런데 와 지헌테 이런 무서운 시련이 닥쳐오는 깁니꺼?”
작년에 미수(米壽:88세)를 넘긴 금곡동 노(老)보살님이 나. 웅봉법사를 찾아와 하시는 하소연이다.
보살님은 지나치다할 정도로 관음정근(觀音精勤)주력기도(呪力祈禱)
삼매(三昧)에 푹 빠져있는 불자(佛子)님이시다.
“법사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놈의 가물치 때문에 또다시 죽게 되었습니다.”
금곡동 노(老)보살님의 원한 맺힌 가물치 타령이 시작된다.
노(老)보살님과 가물치와의 악연(惡緣)은 한참을 거슬려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금곡동 노(老)보살님이 구포에 살 때다.
시집간 보살님의 큰 딸이 손자를 가져 출산하기 위하여 친정집에 들렸을 때 발생한 끔직한 업보(業報)다.
친정에서 보살님의 큰 딸은 산파(産婆)를 불러 떡두꺼비 같은
옥동자(玉童子)를 순산(順産)하게 되었다.
“아지매, 순산입니더. 고추네.
산모가 출산한다고 욕봤는데 가물치나 한 마리 고아 주이소.”
아들 외손자를 보게 된 보살님은 산파(産婆)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삼칠일(三七日)이 지나기 무섭게 얼른 구포 뚝 밖으로 달려가 가물치 세 마리를 구입하여 산모 구안(求安)에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남아선호(男兒選好)사상이 강(强)할때라 첫딸이 첫 외손자를 순산했으니 아들 손자를 점지해준 삼신할미의 고마움에 입이 찢어져 귀에 걸리고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웠다.
크고 힘 좋고 튼튼한 놈으로 골라 세 마리를 구입했다.
앞마당 수도(水道)가에 임시 마련한 연탄화덕에 솥을 올려놓고 참기름을 붓고 자글자글 참기름이 끓어오를 때 가물치를 산채로 솥에다
던져 넣고 솥뚜껑을 ‘꼭’ 닫고 있는 힘을 다해 누르고 있었다.
‘펄펄’ 달아오른 참기름 속에서 가물치가 어떻게든 살아나려고 버둥대는 몸부림에 솥뚜껑이 ‘들썩들썩’ 거려 아녀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가물치의 살기위한 거센 몸부림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보살님의 손에 힘이 ‘쑥’ 빠져 나가는 순간 솥뚜껑이 달아나고 가물치 한마리가 뛰어올라 수도(水道)가에 나가 떨어졌다.
그리곤 붙잡을 겨를도 없이 살기위해 쏜살같이 수도(水道)가에 자리한 하수구를 향하여 질주해 들어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하필이면 그중에서 제일 크고, 제일 튼튼하고, 제일 힘 좋은 놈이 도망가고 없더란다.
속이 상할 대로 상했으나 할 수 없이 시집 안 간 둘째딸한테 솥뚜껑을
맡겨놓고 뚝 밖 선착장으로 달려가 가물치 한 마리를 더 구입하여
정성껏 고아서 큰 딸 산후구안을 잘 마쳤다.
그 후 3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늦장마로 낙동강 물이 범람(氾濫)하여
낙동강 하류를 휩쓸고 지나갔을 때다.
뚝 밖 낙동강물이 넘치면 뚝 안 구포일대의 하수구가 역류하여
더 큰 수해를 입기 마련이다.
물난리를 치룬지 사흘인가 지나서 친정집이 걱정이 된 울산 사는
큰 딸 내외가 토요일 오후를 택해서 다니러 왔다.
삼 년 전에 출산한 외손자를 안고 왔다.
방긋 웃고 뒤뚱대는 외손자 녀석 재롱에 물난리도 잊고 즐거워 할쯤
“엄마! 엄마!”하고 큰 딸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보살님을 불렀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겨나 싶어 깜짝 놀라 온 가족이 달려 나가보니
더 놀랄 일이 정작 그곳에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가물치 한 마리가 그곳에 있었다.
검고 윤이 나야할 가물치의 피부가 이른 봄 매화꽃 피듯이 곳곳에
희끗희끗하더란다. 머리는 반쯤 면사포를 쓴 것처럼 하얗게 변색된 모습의 가물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넙죽이 엎드려 있었다.
“아이고, 신통한 녀석! 그때 그 가물치네.
그때 저 녀석 낳고 산후 구안할 때 도망간 그놈이네.
그래, 이놈아! 뛰어봤자 벼룩이지 네놈이 어디로 간다고?”
험상궂은 가물치 몰골에 놀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고하고 금곡동
노(老)보살님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얼른 붙잡아 참기름
붓고, 볶고, 덖고, 고와서 가물치 곰탕을 즉석에서 만들었다.
“이 곰탕은 에미만 먹어라. 원래가 에미 몫이다.”
굳이 어머니의 말이 아니래도 가물치의 험상궂은 몰골에 질린 가족들이 먹기를 외면했다.
“먹어둬라. 가물치가 오래되어 용(龍)이 다 되었더라!
약으로 생각하고 먹으면 된다.”
큰 딸 역시 마찬가지로 먹기 싫어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강압에 못 이겨 억지로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큰 재앙을 불러왔다.
가물치 곰탕을 먹은 큰 딸이 먹은 지 한 시간도 못되어 복통을 호소하며 배를 움켜쥐고 방구석을 헤매고 다니더니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병원으로 실려 가는 동안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사람이 죽으면 집안으로 모시던 시절이다.
죽은 딸을 친정집 안방으로 모신 어머니는 장의사가 수의(壽衣)를
입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기절을 하고 말았다.
죽은 큰 딸의 피부가 희끗희끗 매화꽃 피듯 희끗희끗 얼룩진 피부로 변해 있었다.
큰 딸의 얼굴 반쪽이 하얀 면사포를 쓴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랬다. 원한 맺힌 가물치가 보복을 한 것이다.
삼 년 전 큰 딸 산후(産後)구안(苟安)때 하수구를 타고 도망친 가물치가 하수구 하구가 막혀있어 강(江)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하수구에 갇혀서 온갖 잡스런 오물을 먹고 살다가 폭우(暴雨)로 강물이 하수구로 범람(氾濫)하는 바람에 본래 들어갔던 입구로 되돌아 나온 것이다.
가물치의 험상궂은 피부며 머리는 그때 기름 솥에서 복고 덖을 때
입은 화상(火傷)자국인 것이다.
가물치는 잡식(雜食)성 어종(魚種)이다.
가물치는 물 바깥에서도 숨을 쉬고 산다.
3년 세월을 하수구에서 온갖 독성을 가진 오물을 먹고 독(毒)으로
물들어갔던 것이다. 이 독을 그대로 먹었으니 안 죽고 배기겠는가?
여기까지는 가물치의 한 맺힌 보복일수도 있고, 또 삼년 전 잃어버린
가물치에 대한 욕심이 불러온 화근(禍根)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그러나 재앙(災殃)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 태어난 외손자가 어릴 때는 몰랐는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서서히 이상하게 변해갔다.
그때 부인을 잃고 재혼한 아버지 밑에서 별 말썽 없이 잘 지내던
아이가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어머니를 잘 따르고 이복형제들과도 우애 좋게 잘 지내던 아이가
가출이 잦아지고 차츰차츰 폭력적으로 변했다.
큰 딸이 죽고 나서 사위 보기가 민망해서 모른척하고 살려고 하였는데
고맙게도 사위가 새로 맞은 부인과 함께 명절마다 보살님을 찾아왔다.
새로 들어온 부인도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보살님을 친어머니 받들듯 잘 대해주었다. 움딸도 그런 딸이면 친딸보다 좋단다.
그 움딸로부터 외손자가 부랑해졌다는 통보를 받기 사나흘 전부터
보살님 꿈에 꿈에서라도 보기 싫은 그 원수 놈의 가물치가 나타나 꿈자리를 괴롭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곤 문제가 터진 것이다.
“어머니, 아이가 경찰서에 붙들려갔습니다.”
애들 엄마가 입이 안 떨어지는지 기어들어가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움딸의 목소리에서 감(感)을 잡은 보살님이 울산경찰서로 달려가 외손자 면회를 신청했다.
면회실로 들어서는 외손자를 보고 보살님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쳐
실신하고 말았다. 외손자의 얼굴 반쪽에 보살님만이 알고 있는 가물치의 면사포 그림자가 묻어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무더운 여름철인데도 소매긴 셔츠를 입은
외손자에게 달려가 상의(上衣)를 벗겨보았다.
“아이고!”
놀라고 나자빠질 일이다.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아이의 피부에 원수 놈의 희끗희끗한 매화꽂이 만발했던 것이다.
아이는 남모르는 백선종(白癬腫)으로 고통 받고 있었던 것이다.
외손자의 얼굴과 피부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원수 놈의 가물치를 빼다 꽂은 듯이 닮아 험상궂어 변해 갔던 것이다.
그 후 외손자는 경찰서를, 감방을 제집 드나들 듯 수십, 수백 번을 드나들더니 제풀에 병이 들어 40도 못 채우고 저 세상으로 갔다는 것이다.
외손자가 한참 사고치고 다닐 때에 보살님은 녀석의 새엄마의 정성에
감동했단다. “누가 저렇게도 자식을 위할 수 있을까?”
동네 사람들이 모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의 새엄마는 경찰서로, 교도소로, 사찰로 쉼 없이 다니면서
아이의 바른길 인도(引導)를 경찰에 매달리고, 검사 판사에 매달리고,
마지막엔 부처님께 하소연 하였다.
“아무렴,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도 저렇게는 못한다.
못하고말고! 저 보살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밤을 새우며 아이의 바른길 인도를 위해 삼천(三千)배(拜)를 올리고
목이 터지라고 관세음보살님을 불러대는 아이의 새엄마를 보고 다른
도반보살들이 칭찬하는 말이다.
금곡동 노(老)보살님도 이때부터 불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애들 엄마, 움딸과 함께 전국 방방곳곳 유명한 스님은 다 친견했고
영험이 있다고 소문난 사찰은 다 가보았단다.
그때 소백산 어느 사찰에서 큰 스님을 친견하고 화두를 받았는데
일심으로 관세음보살 주력정근이란다.
혹시라도 소문처럼 영험이 있어 가물치의 저주(咀呪)가 풀려 외손자
녀석의 업장이 소멸되길 기원(祈願)하며 정말로 열심히 매달렸단다.
그 세월이 40년이 넘어 외손자는 장가도 못 가 보고 몽달귀신으로
죽었는데도 자기는 지금도 계속 관세음보살정근에 열심이란다.
“스님, 기도는 내 공부라요.
남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내 기도(祈禱)라니까요?”
처음 만난자리에서 대뜸 나를 가르치려고 드신다.
“그놈의 원수, 가물치 때문에 큰 딸도 죽고, 외손자도 죽었는데 진작
죽었어야 할 죄 많은 이 늙은이 혼자 남았는데 이제야 깨달았네요.”
제법 한소식한 티를 낸다. 도사(道士)가 다 된 것 같다.
그리고 자기는 기도 중에 자기에게 화두를 준 열반하신 큰 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큰 스님을 통(通)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단다.
“그래요? 그런데 보살님, 여기에는 왜 오셨는데요?”
자기는 공부가 다 되었다며 자신만만해도 아직 미련이 남아있다는 것을 감지한 나는 반문하며 그 보살님을 안내해 온 다른 보살님을 응시했다.
“형님, 엉뚱한 소리 말고 본론만 말씀드리세요.”
나의 눈길을 받은 다른 보살님이 참다못해 끼어들었다.
“저 보살님의 움딸이 피부병에 걸렸는데 처음에는 아토피라고 했다가 지금은 일종의 피부암이라고 한다네요.”
다른 보살님이 대변해준다.
그러자 금곡동 노(老)보살님이 말문을 여는데
아, 글쎄! 보살님이 또다시 잊어버리고 있던 원수 놈의 가물치 꿈을
몇 일전에 꾸었는데 그 다음날 움딸이 피부암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친목계에서 오랫만에 만나 우연히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된 우리 능엄정사 신도님으로부터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를 통하여 큰 영험을 본 보살님이 나에게 모시고 온 것이었다.
“보살님, 대화중에 자꾸 그놈의 원수, 그놈의 원수 하시는데 그래,
그놈의 원수 가물치와의 악연(惡緣)은 풀었는지요?”
나는 금곡동 노(老)보살님의 ‘그놈의 원수’라는 말에서 아직도 가물치를 원망하는 보살님의 분심(忿心)을 읽을 수가 있었다.
“아니요, 악연(惡緣)은 무슨 놈의 악연(惡緣)이요?
큰 스님 말씀이 관세음보살님만 열심히 부르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一瀉千里)로 해결된다고 하든데요.
나는 관세음보살만 열심히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다 알아서 해줍니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의 기도만 해서는 곤란하다.
“보살님, 보살님이 큰 딸 산후 구안을 위해 가물치를 볶고 고은 것은 보살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중생의 생명을 죽인 것입니다.
그로인해 발생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악순환 고리를 해결할 생각은 접어두고 관세음보살만 부른다고 해결이 될까요?
또 지금 계속 그놈의 원수 가물치 하는데 그것은 분심(忿心)이자,
진심(嗔心)입니다. 아무리 말 못하는 미물(微物)이지만 가물치의 입장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지금도 가물치를 원망하는 것은 치심(癡心)입니다. 어리석은 마음이고 행동인 것입니다.
보살님! 이것이 바로 탐(貪), 진(嗔), 치(癡) 삼독심(三毒心)입니다.
보살님 관음정근도 좋고 주력기도도 좋지만 우선 보살님 마음속에
자리한 삼독심(三毒心)부터 제거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가물치 영혼에 참회(懺悔)하십시오.”
나는 준엄하게 금곡동 보살님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큰 스님 화두인 관음정근을 지극정성으로 40년 수행해온, 나름대로는 대단한 자부심으로 반론을 제기하던 노(老)보살님은 나, 웅봉법사의 강(强)한 법문 앞에 수그러들었다.
“법사님, 그럼 어쩔까요?
어떻게 하면 가물치 영혼에 참회를 하겠습니까?”
다소곳이 물어온다.
“그래요, 보살님! 그럼 우선은 보살님 마음속으로부터 가물치에
대해 미안함을 가지고 속죄(贖罪)해 보세요.
그리고 방생(放生)을 한번 해보세요.
방생은 미꾸라지 몇 마리, 잉어 몇 마리 방생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계획적으로 장기적으로 꾸준히 한번 해보세요.
예로 들자면 낚시터를 찾아다니면서 낚시꾼이 잡은 고기를 사서
방생(放生)하십시오. 그리고 가물치들이 살고 있는 강가나 연못을
찾아가 먹이를 던져주세요. 이것이 얼마나 큰 공덕인데요.
그리고 여유가 되면 공부하는 수행자들에게 보시하십시오.”
“법사님! 스님들 옷 한 벌이 얼마나 비싼데요?
우리 같은 늙은이는 마음은 있어도 형편이 못돼 못합니다.”
보살님이 정색을 하며 손을 내젓는다.
“보살님! 얼마나 하는데요? 한 10만원 합니까?”
하도 심하게 거부하시기에 평소 내가 사 입는 수준에 맞추어 물어봤다.
“법사님, 몰라도 너무 모르네요. 내가 바느질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모르긴 몰라도 한 벌에 최소한 100만원 이상은 줘야 할 겁니다.
좋은 옷은 한 벌에 오륙백 만원도 더 합니다.
세상물정을 몰라도 이렇게도 모르시다니......”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보살님이 하시는 말이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왔다고 후회하는 눈치이다.
“그래요! 보살님, 수행자는 꼭 스님들만 수행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스님들 중에서도 어렵게 수행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을 찾아 보시하십시오.
잘되셨네요. 마침 보살님이 바느질로 먹고 사신다고 하시니 직접
옷을 만들어 보시하면 더욱더 좋습니다.
우선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에게 절 바지라도 하나씩 보시해 보세요.”
이렇게 하여 금곡동 노(老)보살님의 색다른 수행이 시작된 것이다.
보살님은 매주 토요일, 일요일만 되면 밀양 삼랑진, 심지어는 영천까지 낚시터를 찾아 나선단다. 낚시터에서 낚시꾼들이 낚은 고기들을 사정하여 얻기도 하고 때론 사기도하여 인근 강물에 방생을 한단다.
그리고는 짬을 내어 절 바지를 만들어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솜씨가 부족하여 보시해도 받은 도반들이 시큰둥하더니
점차 기술이 향상되어 이제는 서로 달라하고 받고는 재료비에 보태라고 다시 보시(布施)금을 준단다.
그때 피부암 선고를 받은 움딸도 관음(觀音)정근기도의 가피력인지
가물치와의 악연을 참회하고, 방생하고, 도반들에게 법복을 보시한
공덕인지는 몰라도 오진(誤診)으로 밝혀지고 이제는 완치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단다.
“법사님, 고맙습니다. 다 법사님 은덕입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보살님과 함께 나를 찾은 보살님의 움딸 보살님이 나에게 눈물로 보은(報恩)의 삼배를 올리면서 다짐하는 말이다.
“법사님, 이제는 그 보시(布施)금으로 재료를 구입하고 또 남는 돈으로
가물치 사료도 구입하고 낚시터 방생 고기도 구입하는데도 조금은 남습니다.”
깡마른 체구에 낚시터를 찾아다니느라고 새까맣게 탄 월남인 모습으로 간혹 한 번씩 나한데 들려 고마움을 전달하고 수행을 점검받고 법담(法談)을 같이 나누시는 10년지기(知己) 보살님이시다.
이 보살님은 자기들의 표현대로 나, 웅봉법사의 가르침으로 10년 세월을 부처님의 가피(加被)속에서 모처럼 편안한 삶을 살아오신 것이다.
그 보살님이 오늘 찾아오신 것이다.
그리고 10년 세월을 잊고 지내던 험상궂은 매화꽃 원수 놈의 가물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 어젯밤 꿈자리에서 원수 놈의 가물치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약 올린다고 반쪽 면사포 얼굴로 윙크까지 보낸단다.
“법사님, 보세요, 내 몸뚱이에 생겨난 매화꽃을 보세요.”
부끄러움도 모르고 보살님은 웃옷을 걷어 올리고 속살을 내보인다.
내가 부끄러워 바로 볼 수 없었으나 내가 본 것은 분명 가물치가 보낸 저주의 매화꽃이 아니라 나이 들어 늙으면 나타나는 저승꽃이었다.
“허허......”하고 내가 웃었다.
“법사님, 왜 웃어요? 창피하게요.”
그제야 부끄러웠던지 얼른 웃옷을 내린다.
“보살님, 가물치가 윙크를 해요? 윙크는 좋을 때 하는 것 아닙니까?
보살님은 째려보는 것하고 윙크도 구분이 안 됩니까?
관세음보살 열심히 기도해도 그것은 모르겠지요?
보살님, 이제는 가물치의 원한(怨恨)이 풀린 것입니다.
그리고 보살님 배에 생긴 매화꽃은 가물치가 보낸 저주가 아니라
사람이 늙어 나이 들면 생겨나는 저승꽃입니다.
부처님이 보낸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열반 꽃이지요.”
나는 담담히, 보살님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차근차근 법문했다.
“예? 법사님요, 저승꽃이요? 벌써 저승꽃이 피나요?
뱃가죽에도 저승꽃이 생기나요?”
보살님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보살님, 벌써라니요? 보살님 연세가 미수(米壽)입니다.
88세면 생길 때도 되지 않았나요?
보살님! 보살님한테는 저승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보내주신 열반화(涅槃花), 열반의 꽃입니다.
이제 이 꽃보고 열반 준비하라는 가르침의 꽃입니다.”
“법사님, 나는 놀랐다. 죽는 줄 알고! 죽어야지, 죽어야지 했는데
정작 죽는다고 생각하기가 무섭더라. 공부가 덜돼서 그렇제?”
이제는 마음이 놓이는지 말씀까지 낮추시고 농담을 걸어온다.
“그래요, 보살님! 내가 큰 스님이고 도사(道士)라고 큰소리치는
분들도 열반할 때 보면 다 알게 됩니다.
진정으로 공부가 된 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수행한 결과로 금생의 번뇌를 벗어던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분들의 죽음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욕망의 불꽃이 다 꺼지고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보살님도 이제 원수의 가물치가 아니라 선지식 가물치로 인하여
인연 공부 많이 한 금생(今生)을 서서히 회향(回向)해 보세요.
보살님! 이제는 가물치가 안 무섭지요?
가물치로 인해 인과응보(因果應報)를 확실히 배웠지요?
이게 불교이고 인생이고 우주법계의 진리(眞理)랍니다.”
“아따, 법사님은 모르는 게 없어요? 나이도 나보다 한참 아래인데......
언제 그렇게 공부를 했어요?
내가 볼 때는 법사님이 진리(眞理)덩어리네요.”
노(老)보살님은 극구 사양하는 나에게 선물 꾸러미를 남겨두고 가셨다.
“법사님! 내가 기술이 없어서 법복(法服)은 못 짓습니다.
어디 좋은데 가서 한 벌 맞춰 입으세요.
옷이 거울이라고 법사님 정도 되면 좋은 옷 입고 좋은 방석에 앉아야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만날 회색 티셔츠나 입고 있으면 안 됩니다.
권위가 안서잖아요. 꼭 맞춰 입으세요. 꼭요.”
금곡동 노(老)보살님이 내게 주신 자비(慈悲)의 메시지이다.
나는 아직도 금곡동 보살님이 주신 옷감으로 옷을 맞춰입지 않았다.
금년 가을에는 한번쯤 맞춰 입어 볼까한다.
혹시라도 보살님 말씀대로 없던 권위(權威)라도 생길라나?
참, 권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말 못하는 미물인 가물치도 함부로 살생했다가 엄청난 과보를 받지
않았는가? 가물치에게도 나름대로 권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참회는 권위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는데는 무쇠도 녹는다.’라나 뭐라나?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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