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봉법사 법문집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관련링크
본문





돈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자급자족의 원시시대를 지나서 서로 생산물을 교환하는 물물교환의 시대를 지나 화폐를 제작하여 비로소 경제 같은 경제 행위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려 문종의 넷째왕자 의천 대각국사가 중국에 불법을 공부하기위해 유학 갔다가 오면서 당시 중국 송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화폐제도의 편리함을 보고 고려국의 중생구제를 위하여 그의 사가의(私家) 형(兄)인 숙종에 건의하여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철전 건원중보(996년)를 비롯한 삼한통보, 해동통보를 제작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중국당나라의 화폐 등이 유통된 사례들이 보이기도 하나 국가적으로 처음사용은 건원중보가 최초이다.
의천 대각국사는 건원중보를 제작유통하면서 화폐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할지 고민하다가 올바른 유통을 위하여 도[(道; 길, 이치, 근원, 방법, 인의(仁義), 덕행(德行)]라고 이름을 정한 것이다.
그러나 올바르게 통용(通用)되여야 할 도(道,돈:화폐)가 그의 생각대로 유통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돈 앞에서는 모든 사람의 정신상태가 뱅 돌아버리는 것이었다.
반야심경에서 강조하는 전도(顚倒)몽상(夢想)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도(道)가 아니라 물질의 대명사, 욕망의 대명사, 전도몽상의 대명사,
돈이 되고 만 것이다. 이것만 봤다하면 보는 사람마다 정신상태,
의식이 다 홱 돈다고 하여 돈이라고 이름이 되고 만 것이다.
국민들이 오죽 돌아버려서면 고려 말 최영 장군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 최영장군에게 황금(黃金)을 보기를 도(道)같이 하라고 하는 가훈(家訓)을 남겼겠는가?
“ 황금을 보기를 돌(石)같이 하라,
이러신 아버지 뜻을 받들고,
한평생 나라위해 받쳐 서서니,
계례의 스승이다. 최영장군“
초등 학교 때 배운 최영장군 노래 말이다.
돌(石) 이 아니다, 도(道)다. 후세 사가(史家)들이 뜻을 쉽게 하기위하여 돌로 표현하나 도(道)가 맡는 말이다.
도(道)에는 꼭해야 할 것과 꼭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경제 행위도 꼭 해야 할 것과 꼭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경제의 가차관이다. 돈의 가치관이다.
그렇다 이제 본격적으로 화폐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돈은 조폐공사에서 만들어 낸다.
한날한시에 발행된 돈이 통용과정에서 여러 가지 형상들을 만난다.
어떤 돈은 정말로 착한데 쓰인다.
수술비가 없어 수술을 못하여 꺼져가는 어린생명을 구하는가 하면,
쌀 한 톨, 빵 한 조각이 없어 염방 굶어 죽어가는 목숨들을 살려내기도 하는 꼭 써야할 곳에 쓰이는 것이다.
또 어떤 돈은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몰래 쇼핑백에 담겨서,
사과상자에 넣어져 냉동 탑 차량에 실려서 남몰래 부당한 뇌물로 전달되어 사회악을 만들기도 한다.
도시행정 전문가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든,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어느 광역시 시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 더러운 뇌물 사건으로 감옥소에서 자기 결백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을 매어 목숨을 끊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또 있다, 어느 광역단체 도지시사도 뇌물사건을 조사 받든 중 한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대권장악이 확실시 되던 어느 정당은 집권 후의 권력을 공유(共有)하고자 밀려드는 뇌물로 주체할 수가 없어 당사(黨舍)가
아닌 고속도로 휴게소등에서 차떼기로 받다가 패당망신을 당할뻔 하기도 했다. 돈을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쓴 것이다.
이처럼 돈은 더럽고 추잡해 질수도 있다.
이것은약과다. 돈 때문에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생명을 빼앗고,
돈 때문 부모를 죽이고 형제를 죽이고 이웃을 죽인다.
돈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이다.
돈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 지변한다.
돈은 통용 과정에서 인연에 따라서 깨끗하게 사용되기도 하고,
오랜 수명을 유지하기도 한다.
인연을 잘못만나면 더럽고 추해지고 손상되어 생명이 단축기도 한다.
부자 신사양반을 만나면 돈은 신사장지갑 속에서 빳빳한 젊음을 자랑하고, 귀부인을 만나면 귀부인의 명품지갑 속에서는 감미로운 향기에 물들기도 한다.
그러나 생선장수 보살님들을 만나면 생선장수 보살님들 앞치마 속에서 생선 비린내에 물들기도 한다.
고스톱 판 노름판에서는 담배연기에 찌들고, 찢기고 꾸겨지고, 내팽개치고 온갖 서러움을 을 다 받는다.
그러면서 돌고 돌아 오염되고 훼손되면 한국은행으로 회수되어
그 생명을 마감한다.
돈은 아무리 더럽고 악취(惡臭)에 추하더라도 훼손(毁損)된 부분만 없으면 한국은행에서는 고스란히 액면가 그대로 교환해 준다.
그러나 훼손이 많이 되면 훼손부분의 다소(多少)에 따라 비율에 따라 적당히 교환해준다.
인간의 일평생도 똑 같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돈처럼 별의별 사건 사고들을 다 만난다.
선(善)한 인연, 악(惡)한 인연, 고운 인연, 추한인연, 무서운 인연,
편안한 인연 .....인연 인연의 연속이 인생이다.
계속되는 인연 속에서 돈처럼 스스로의 업(業)에 스스로 물들고,
스스로 업장(業障)을 쌓아가면서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다.
인생의 한국은행은 종교(宗敎)이다.
오염된 돈을 한국은행에 가져가면 새 돈으로 교환해 주듯이 인생도 종교에 귀의하여 기도와 수행을 통하여 탐, 진, 치 삼독에 물던 업장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의 삶을 선택할 수가 있다.
화폐의 훼손 대소(大小)에 따라 교환금액이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종교생활도 기도 방법에 따라서, 수행(修行)강도(强度)에 따라서
새로운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가 있다.
돈은 구체적으로 종교와 연결하면 불교의 시주금 또는 보시금으로,
기독교의 11조 헌금으로, 헌금으로 천주교 미사헌금으로도 사용될
수도 있다.
불교의 보시금도 큰 사찰 대웅전 대들보 불사금으로 3000만원,
기둥 불사금으로 500만원 쓰여 질수가 있다.
또 조상님들 천도비용으로 수천만 원이 쓰이기도 한다.
아니면 우리 능엄정사 우란분절 영가천도 불사 처럼 5천원 소요의
적은 불사 금으로 써지기도 한다.
과연 어떤 불사에 시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일까?
물론 종교에 보시하는 것은 올바른 용도로 사용되면 다 좋다.
그러나 보시는 보시하는 시주자의 마음이 청정해야 한다.
보시금도 뇌물성이나, 아부성이나, 가급적이면 개인의 욕망이 배제된 청정해야 된다.
물론 보시금을 받는 사찰이나 불사(佛事)자체가 청정해야한다.
이것을 삼청정 보시라고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시하는 사람이나 보시 받는 사람이나 보시금자체가 걸림이 없는, 머물음 없는 무주상보시가 최상의 보시이다.
한국은행의 화폐교환 방법이 투명하고 정확하듯이 인생의 한국은행인 종교도 인생의 업보에 따라 투명하고 정확한 과보(果報)가 따른다.
어떤 종교를 선택할 것인가? 나의 정서(情緖)는 어떤 종교일까?
불교를 선택했더라도 어떤 사찰에서, 어떤 선지식을 만나 어떤 가르침을 받고 어떤 기도를 할 것인가? 를 먼저 생각해야한다.
수명을 다한 화폐는 한국은행을 통하여 원래 태어난 곳,
조폐공사로 돌아간다. 수집된 화폐는 조폐공사에서 기계로 분쇄되어 새로운 화폐로 태어(제작)난다.
대부분 만원권 화폐가 만원권으로 재생되나 화폐의 오염도에 따라서는 만원권화폐가 오천원 으로, 오천원권이 천원권으로 강등되기도 한다. 오염이 심하게 된 화폐는 지질의 강도가 떨어져 고액권으로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도 수명이 다하면 죽어 명부(冥府)에서 다시 새로운 생(生)을
부여 받게 된다. 새로운 윤회(輪回)가 시작되는 것이다.
극선(極善)자(者)는 극락으로, 극악(極惡)자(者)는 지옥으로
선자(善者)는 삼선도(三善道)로, 악자(惡者)는 삼악도(三惡道)로
윤회하는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대부분 사람으로 태어난다.
사람으로 태어나되 선악(善惡)의 과보를 받아 화폐처럼 업보(業報)중생(衆生)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이 오염되면 오염된 화폐처럼 축생으로 아수라로 지옥으로 강등(降等)하여 태어나는 것이다.
오염도에 따라 돈도 돌고 인생도 돈다.
돈이 인생이고 인생이 돈인 것이다
돈을 도(道)로 알고 벌고 쓰라.
인생을 도(道)로 알고 닦고 살라라!
돈이 없으면 사람은 살기 힘들다. 특히 물질만능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돈이 바로 생명이고 삶 자체이다.
도(道)없이도 살기 힘들다. 특히 물질에 최면(催眠)되고,
물질에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도(道)만이 바른 삶의 길잡이이자 행복의 샘터임을 알아야 한다.
돈을 바로 알자. 돈을 본래의 이른 도(道)로 알고 쓰자.
인생을 바로 살자. 인생을 도(道)로 알고 도(道)를 수행하며 살아가자. 그리고 외쳐보자! 돈[도(道)}이 좋긴 좋구먼! 도(道)가 돈이야!
진정 돈을 아는 도(道)를 닦는 도사(道師)님이 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