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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인연, 인연 그리고 또 인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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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3-17 22:48 조회6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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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인연, 인연 그리고 또 인연! 이야기

부모자식(父母子息)은 육백생(六百生)의 인연이다.

불교를 흔히들 인연종교라고 한다.

인연을 빼고서는 불교를 논할 수가 없다.

옷소매가 스쳐도 지나간 전생(前生)과 살고 있는 금생(今生)과 앞으로

다가올 내생(來生)의 삼세(三世)의 인연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흔히들 부모자식사이는 전생에서 빚쟁이들이 만난다고 한다.

형제자매는 전생에서 경쟁자들이 서로 만나고 부부사이는 전생에서

원수들이 만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사바세계 일체중생들의 인연이란 모두가다 원한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새로운 인연은 새로운 원한을 만들어가는

윤회의 쇠사슬을 다람쥐 체 바퀴를 돌듯 거듭해 돌고 있는 것이다.

만일 원한의 대상이 없다면 악연(惡緣)의 고리가 끊어져 없을 것인데

참, 진, 치 삼독의 중생심으로 끊임없는 원한의 대상을 만들어 쌓아감으로 더 짓은 삼악도(三惡道)의 악연을 만들고 쌓아 감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일체중생이 모두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이는 모두가 부처님이 될 수 있건만 중생들의 생각이 전도(顚倒)하여 세간(世間)에만 탐착(貪着)하고 벗어날 요령을 알지 못하며 고통의 근본을 세워 원수를 기르나니 그럼으로 삼계(三界)를 윤회하고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육도(六度)를 윤회(輪廻)하며 몸을 버리고 받길 거듭하며 잠깐도

쉬지를 못한다. 고 하셨다.

왜냐하면? 일체중생이 무시이래로 암매(唵昧)한 생각을 서로 전하면서 무명(無明)에 눈 가리 우고 애욕에 빠져들어 삼독(三毒)심을 일으켜

악연의 대상과 악연의 인과(因果)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생의 죄악이 무량무변하여 원한의 대상들이 서로 만나 악연을 쌓는 무서운 고통의 업장(業障)이 그칠 날이 없는 것이다.

어리석고 미련한 중생들이라 무명(無明)은 지혜(智慧)를 덮었고,

번뇌는 마음을 덮어서 스스로 알지를 못하고 스스로 전도몽상을

일으켜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경전(經典)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맺힌 원결을 풀어 나갈 줄을 모르는 것이다.

중생이 선업(善業)쌓고 수행(修行)을 통하여 해탈열반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악업을 짓고 악연을 쌓아가며 스스로 악도를 헤매는 것을 보면 누에가 스스로 제 몸에서 실을 뽑고 스스로 집을 지어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것과 같이 무량한 고통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생은 눈으로는 좋은 빛을 탐하고, 귀로는 아름다운 소리를 탐하고,

코로는 향기로운 냄새를 탐하고, 혀로는 내입에 맞는 입맛을 탐하고, 몸으로는 보드라움을 탐하여 항상 5진(塵)의 속박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이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깨달고 보면 우리의 부모형제 자매 일가친척들이 모두가 다 삼세(三世)의 원수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모든 원한의 대상들은 모두 다 친한데서 생기는 것이다.

만일 친한 사이가 없다면 원수도 원수의 대상도 생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럼으로 친한 사이가 없다면 원수도 원수의 대상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다른 곳에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서로가 아예

원수질 일이 없다. 서로가 원한의 대상이 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원한의 마음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한을 일으키는 중생들은 서로가 친함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서로의 욕심으로 인하여 충돌이 생기고 충돌에 의하여 원한이 생긴다.

그러므로 친척과 일가권속 친구들이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원망하고,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자매도 서로가

원망하고 서로가 혐의(嫌疑)한다,

조금만 뜻이 안 맞아도 화를 내고 원망한다.

사소한 재산다툼으로 다투고 살생까지 불사한다.

백번 잘해주다가도 한번 마음에 쾌하지 않으면 분노하고 외면한다.

중생의 마음이란 잠깐만 다른 생각을 품으면 곧 나쁜 생각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럼으로 사소한 다툼으로도 서로원수를 맺고

세세연연 대대로 악연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면 우리가 그렇게 미워하고 저주(咀呪)하는 삼세(三世)의

원수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전생의 나의 부모형제자매

일가친척들임을 알아야 되는 것이다.

지금의 부모형제자매 일가친척이 내세(來世)에는 원수가 될 수 있음을

제대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부모자식간의 인연(因緣)은 육백생(六百生)의 인연이 있는

빚쟁이들 이라고 한다. 부모는 전생에서 빚을 쓴 사람이고 자식은

전생의 빚을 받기위하여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란다.

그래서인지 부모가 자식들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또 자식은 부모의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란다.

사실 부모 자식 간에는 서로 아까운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 있어서나 자식들이 노약한 부모를

봉양하는 과정에서 아끼고 타산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모 것이 자식 것이고 자식 것이 부모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서로가 부처님께 보시(布施)하는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보시에는 재물로 하는 재보시가 있고, 가르침으로 하는 법보시가 있고

서로가 서로의 두려움에서 구원해주는 무외(無畏)보시가 있는 것처럼

부모자식의 관계가 바로 이런 인연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모 자식 간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법으로 강제되기 이전의 인륜도덕의 도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계율(戒律)이라하고 따르고 실천하는 것을 지계(持戒)라고 한다. 스스로 알아서 지켜가는 진리의 법칙이다.

유교에서는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천륜(天倫)이라고 한다.

사실 내 부모만 아니라면, 내 자식만 아니라면, 패주고 싶고, 고발하고

싶고 안 할 말이지만 죽이고 싶을 때도 허다히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부모를 버리고 자식을 내다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산 때문에 원한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는 천륜(天倫)을

거부하는 끔직한 경우가 실제로 언론지상에 왕왕히 보도 되고 있다.

모두가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부모자식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부모자식간의 천륜은 모든 욕망을 우선한다.

천륜(天倫)앞에 욕망은 자제(自制)되어야 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인욕(忍辱)이라고 한다.

부모 자식 간에는 불교의 보시하는 마음, 지계하는 하는 마음,

인욕 하는 마음으로 베풀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보시, 지계, 인욕의 마음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배움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가정교육을 통하여, 학교교육을 통하여, 사회교육을 통하여 체득(體得) 되는 것이다.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교육이라고 하고 불교적 용어로는 정진(精進)이라고 한다.

교육을 통하여 천륜(天倫)을 알게 되고, 인륜(人倫)을 알게 되고,

인과(因果)를 알게 되면 탐(貪)진(嗔)치(痴) 삼독의 욕망이 사라진다.

욕망이 사라진 청정한 마음, 불교에서 말하는 선정(禪定)이다.

있는 그대로를 바로 볼 수 있는 마음, 무심(無心)이요.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智慧)이고 반야(般若)이다.

이들 6가지덕목을 불교에서는 육바라밀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모자식간의 육백생(六百生)인연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육바라밀을 백(百)번을 지키고 실천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법문인 것이다.


칠백생(七百生)의 형제자매(兄弟姉妹)인연(因緣)

형제 자매간의 인연은 한술 더 떠 칠백생(七百生)의 인연이란다.

7백생을 서로 경쟁하며 부닥쳐온 인연이 있어야 형제(兄弟)가 되고

자매(姉妹)가 된다고 한다.

형제간에는 서로 간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형제간에는 네 것과 내 것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우리 것이어야 된다. 옛날 형제간에 우애 있든 시절

사촌(四寸)간에 육촌(六寸)간에 10촌(寸)이 넘는 집안사람들이

산(山)하나를 두고 모두가 우리 산(山)으로 명명 하는 것을 보았다.

소유권이야 누구한데 있든 조상이 남긴 땅이라면 네 소유, 내 소유

안 가리고 모두가 우리 것인 것이다. 그래야 우애가 생기는 것이다.

또 다른 간택은 형제간에는 간택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형님이 하는 일이라서 무조건 잘한 일이라고 편을 들면 안 되고,

내 동생이 한 일이라서 무조건 올은 일이라고 도와주면 안 된다.

옮고 그름을 분별하고 선(善)과 악(惡)을 구별하여 도와줄 것은 도우고

말길일은 맡겨야 된다는 뜻이다.

시골의 어느 마을에 맹호부대 형제가 있고 개병대 형제가 있었다.

맹호부대 형제는 다섯 형제가 모두 월남전에 참여하여 맹호부대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시골이고 출생신고가 들쭉날쭉할 때에 신고가

된지라 오형제가 같은 시기에 병역의무를 하게 된 것이다.

다들 살기가 힘들 때라 큰형이 찢어지는 가난을 물리치고자

부모 몰래 형제 파월을 지원하여 목숨을 담보로 한 전투수당으로

논마지기를 장만할 수가 있었다.

이어 둘째도 셋째도 이어가며 모든 형제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모두

파월을 지원하여 목돈을 장만하여 논도 사고 밭도 사 제법 그럴듯한

부자가 된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오형제가 모두 무사히 병역의무를 마치고 제대를 해 귀향하고서도

다른 집들과 품앗이 할 필요 없이 형제간 끼리 서로 협조하며 우애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들 형제들은 밤과 낮이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그들 오형제들은 들판을 지키며 가꾸어

날로 더 많은 논밭은 장만하고 부자로 살아갔다.

그들 형제는 남들과 싸울 일도 없었지만 다툼이 발생하면 형제들 중

한 사람이라도 다툼이 발생하면 다른 형제들이 싸움을 말기고 일단은

자기형제를 나무라고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알아본 후 편들어 도울

것은 도우고 사과할 것은 사과했다.

형제들이 개입된 다툼이라도 도우고 사과하는 처리하는 결과가

분명한지라 동네 어른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과연 맹호부대 다운 기상을 보여준 것이다.

개병대 형제들은 삼형제다.

위로 두형은 쌍둥이들이고 막내는 그들보다 두 살이 적다.

이들 삼형제들의 우애도 참으로 남들보다 돈독했다.

오히려 맹호부대 오형제들보다 더 진한 형제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삼형제의 쌍둥이 형제는 해병대 창설 초기 해병대 출신들이다.

창설당시에는 특수부대라 행패가 심해 개병대라고 불러 다고 한다.

동생도 형들 따라 해병대에 지원 입대하여 제대를 했다.

나중에는 동생이 더 폭력적이고 더 많은 문제를 만들고 더 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사고 뭉치였다.

이들 삼형제가 해병대 제복을 차려입고 동네어귀에 나타나면

남정네들은 모두가 겁을 먹고 피해 숨어들고 처녀들은 호기심으로

몸을 숨기고선망의 눈초리로 훔쳐보기 바빴다.

이들 삼형제의 폭력성은 온 동네가 다 알아준다.

온 동네뿐만 아니라 온 고을이 다 알아주었다.

이들 개병대 형제의 싸움은 옭고 그름을 따질 필요 없다.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가 없다. 선악(善惡)이 필요 없는 것이다.

삼형제중 한사람의 싸움은 세 사람의 공동싸움이다.

공동의 적이다. 삼형제가 합심하여 달려들어 싸우는 것이다.

이들 삼형제 앞에서는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곤 형제들이 달려들어 개판으로 만들었다.

온 동네 온 고을 사람들이 그들 삼형제를 개병대 형제라고 불렀다.

온 동네 온 고을 사람들이 삼형제를 피해갔다.

그들 삼형제의 상면(相面)조차 부담을 가졌든 것이다.

교도소를 제집처럼 교대로 들락거리든 삼형제는 범죄자가 되어갔다.

온 동네를 지배할 것 같은 삼형제는 끝내 마을에서 사라졌다.

삼형제가 형제 서로간의 행동을 간택(揀擇)하여 이끌어 주지를 못하고

무조건 편들고 도와왔기 때문에 모두가 몰락하고 만 것이다.

형제간에는 서로의 간택으로 이끌어 주는 것을 중요로 하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적 용어로는 택법각분(擇法覺分)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간택을 하려면 정진(精進)이 필요로 한다.

인생을 살아가며 있어 필요한 도리를 배우고 익혀가는 것이다.

형제간이라는 정실(情實)에 끌림 없이 바른 삶을 위하여 서로가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옛날 형제가 많든 시절 형은 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배움이 부족한 부모들이 피땀 흘려 농사지어 큰아들 하나만 공부

시키고 잘 키워 놓으면 그 형이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이끌어 주었든 것이다.

형제간에는 서로가 전심전력을 다하여 나쁜 길로 빠져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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