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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정배의 세제 불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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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3-17 22:48 조회7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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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정배의 세제 불교관

선인상봉(善因相逢) 악인원리(惡因遠離)조석으로 올리는 축원문의

한 게송이다. 범부중생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선한인연을 만나 선업을 닦고 악한 인연은 멀리하여 악업을 짓지 말기를 축원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많은 종교들이 다양한 교리를 가지고 존재한다.

모든 종교가 내세우는 교리는 진리를 뜻하기도 하는데 모두들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를 최고의 진리라고 믿고 신앙하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 속에도 다양한 내용의 진리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단 한마디로 표현하면 불교는 인연의 종교이다.

인(因)이 어떠한 연(緣)을 만나느냐? 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불자(佛子)가 어떤 선지식을 만나느냐? 에 따라서 사고(思考)가 달라지고 수행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고 업(業)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나 웅봉법사는 선지식과의 대단한 인연을 누리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선지식의 가르침 속에 성장하고 살아왔다.

그 많은 선지식 중에서 목정배 박사님으로부터 불교수행의 결정체인 총괄하는 법안(法眼)의 가르침을 받았다.

박사님으로부터 불교공부의 총정리와 함께 회향방법을 배운 것이다.

내가 목정배박사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입학면접시험장이다. 면접시험관과 응시생으로의 인연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입학하고 2년간 학교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박사님의 강의를 듣지를 못했다.

박사님은 내가 입학면접 때는 불교대학원원장을 맡고 계셨는데 내가입학하고 보니 다른 교수님이 새로운 원장으로 부임해 있었다.

초창기 불교TV를 통하여 박사님의 강의를 접하고 직접가르침을 받고

싶은 욕망은 간절했으나 부산에 사는 나로서는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그러든 차 기회가 온 것이다. 국제신문 대강당에서 성철선사상연구회에서 성철큰스님의 선(禪)사상에 대한 대토론회가 있다는 것 이였다.

열일을 제처 두고 토론장에 참석한 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었다.

다른 토론자분들에게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날 그 토론장에서

다른 토론자들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승속(僧俗)을 넘나드는 목정배박사님의 해박에 지혜에 나는 뽕하고

빠져들고 말았다. 나도 박사님처럼 인생을 살고 싶었다.

나는 박사님의 열렬한 마니아가 된 것이다. 열렬한 팬이 되고 말았다.

나도 박사님처럼 재가불교에 헌신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나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을 졸업하고 나 스스로 박사님을 찾아뵙고 대한불교 법사회에 가입했다. 그리고 능엄정사를 창건한 것이다.

“웅봉법사 재가법사가 사찰을 운영하려면 세 번이상은 울어야한다”

박사님이 나에게 내려주신 가르침이다.

나는 능엄정사를 운영하면서 어렵고 힘들 때면 박사님의 이 말씀을

꼭 염(念)한다. 아니 관(觀)한다. 몇 시간이고 그 문구(文句)를

화두삼아 고난을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를 닦아간다.

왜? 재가불교를 하기가 힘들고 어려운가?

왜? 박사님은 나에게 세 번 이상을 울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일까?

능엄정사 창건 10주년 되는 날이 2010년 1월 5일 오늘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 웅봉법사와 능엄정사는

지난 10년간 많은 성장과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성장과 변화 속에는 ‘세 번 이상은 울어야한다’고 나 웅봉법사를

담금질해주시는 목정배 박사님의 용광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목정배 박사님은 나에게 이 우주법계를 바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불교를 바로 볼 수 있는 법안(法眼)을 주신 선지식인 것이다.

능엄정사가 여법한 사찰이 되고 나 웅봉법사가 여법한 법사가 되는

과정에는 목정배박사와 세제불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든 것이다.

나는 오늘도 축원한다. 선인상봉(善因相逢)하고

악인원리(惡因遠離)하기를 간절히 수행하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불교가 아닌지도 모른다.

불교라고하면 불(佛)부처님이 있고 법(法)부처님의 가르침이 있고

승(僧)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승가(僧家)가 있어야 한다.

한국불교에는 아쉬운 대로 부처님은 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부처님의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모두들 석가세존의 제 몇 대 법맥을 이어받은 법손(法孫)이라고 자랑들을 그득하게 펼치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쉬운 예로 비교적 근대고승 서산대사나 경허선사의 법맥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자칭 타칭 큰스님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외형적 절차적 법맥은 이어받았는지 몰라도 내면적 심적(心的)법맥은 못이어 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안이어 받았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분들이 깨달음은 법맥을 이어받았는지의 나로서는 모른다.

그러나 그분들의 행원(行願)만은 법맥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분들이 그렇게 법맥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하는 서산대사, 경허선사,

더 높이 올라가 나옹선사. 무학대사, 까지도 다 살피고 찾아봐도

그분들이 수행을 외면하고 호의호식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런데 왜? 이 어른들의 법맥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분들은

고대광실궁궐에서 외제차타고 금란가사 수하시고 온갖 편안함의 극치를 다 즐기면서 수행은 외면하고 있는가?

“일체계행 지켜가며 천상인간 복수하고, 대 원력을 발하여서 향수불학 생각하고 동체대비 빈(貧)병(病)걸인(乞人) 괄시 말고, 오온색신 생각하되 거품같이 관(觀)을하고 ....................

예전사람 참선할 때 마디그늘 아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예전사람 참선할 때 잠 오는 것 성화하여 송곳으로 찔렀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예전사람 참선할 제 하루해가 가게 되면

다리 뻗고 울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한고!..................

경허선사 참선곡의 일부분들이다.”

깨달음을 향한 경허선사의 간절한 마음이 나타나 있다.

중생구제를 향한 경허선사의 원대한 포부가 깃들어 있다.

그 어디에도 호의호식하고 막행막식하라는 말이 없다.

그 어디에도 친견비운운하며 거금을 챙기라는 말이 없다.

그래서 작금의 한국불교의 부처님의 가르침은 제대로 된 가르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안타까운 현실에서 보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점은 승가에 있다.

부처님은 8만4천의 모든 경전에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설(說)하신다.

비구(남자스님) 비구니(여자스님) 우바새(남자신도) 우바이(여자신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사부대중이 서로 화합하여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는 모습이 만(卍)이라는 글자(字)이다.

사찰을 나타내는 만(卍)자(字)는 절사 자(字)로 알고 있을 정도로 불교와 불자(佛子)들과는 친숙한 글자이다.

그만큼 불교가 존재하는 데는 제대로 된 승가가 중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는 사부대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불교에는 큰스님들만 존재하고 비구 비구니 스님은 없다.

오히려 마하큰스님이 등장해야 할 정도로 커고 큰스님 세상이다.

그런가하면 관광(觀光)불자는 있어도 우바새는 없다.

기복(祈福)불자 무늬불자는 이절 저 사찰 몰려다녀도 우바이는 없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제대로 된 승가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이처럼 한국불교가 절름발이 불교로 전락된 지는 오랜 세월이다.

소위 군사 쿠데타를 통하여 정권을 쟁취한 태조 이성계의 조선왕국

토대 닦기 차원에서 시작된 백성 길들이기 정책에서 시작된 것이다.

정통성 없는 쿠데타정권이 정통성시비에서 벗어나고자 덩치는 커면서 대항력이 떨어지는 집단이나 세력을 선택하여 본보기로 무차별 탄압을 가하여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 게하고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는 방법이다. 국교가 불교임을 빙자하여 청정수행과 중생구제를 망각한 일부

권력(權力)승(僧)들에 의해서 왕권(王權)과 결탁하여 권력을 휘두르고 국론과 사회를 어지럽힌 고려불교가 그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 것이다.

숭유배불(崇儒排佛)로 표현하는 조선왕국 500년의 불교는 탄압으로

얼룩진 잔혹(殘酷)의 불교이다. 숭유배불이 아닌 숭유폐불(崇儒廢佛)의

역사이다. 조선조 폐불(廢佛)의 역사는 혹독하고 잔인했다.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욕설(辱說)들이 그때 그 시절에 생겨났고

모두가 불교와 연관된 불교용어임을 봐도 잘 알 수가 있다.

병신 육갑(육바라밀)떨고 있네. 칠칠맞은 놈(칠각지). 팔푼이(팔정도).

십(시방세계, 십업) 십팔(십팔계). 삼십육계 줄행랑. 빌어먹을 놈.

혀가 만발이나 빠질 놈. 이판사판. 아수라장. 야단법석. 어바리(우바리)심지어는 스님들의 호칭도 조선시대 대표적 천민인 노비인 종(ㅗ)보다도 천(賤)하다고 하여 중(ㅜ)이라 불렸다. 조선시대 종은 주인이라도 있어 죽이면 종 값이라도 물어주고 처벌에 대상이 되었으나 중은 주인도 없고 설사 죽여도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스님들에게 하대(下待)말을 하고 스님들은 사대부들에게 존대(尊待)말을 했다. 이처럼 조선불교는 철저히 깨어지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세계 종교탄압에 500년 세월을 이런 혹독한 탄압도 일찍이 없었고

그런 탄압 속에 명맥을 유지해온 종교도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철저히 망가질 대로 망가진 조선불교는 석가세존의 가르침의 불질을 벗어난 채 유교, 도교, 토속종교 심지어는 무속신앙까지 혼합되어 비빔밥 불교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러한 가운데 일제강점기의 왜색불교를 거쳐 해방과 더불어 종교자유화의 시대를 마지하게 된 것이다. 아니 신앙자유의 시대가 아니라

자유라는 새로운 물결을 타고 새로운 종교 서양종교가 본격적으로

이 땅의 국민들의 정서를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왜색불교는 조선국민 통치라는 불순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제도이긴 하지만 천민불교 폐쇄불교 학대(虐待)받는 불교에서 탈피하고 조선왕조 왕권에 의하여 폐지되었든 불교계를 조직적으로 새로이 체계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불교계의 본사(本寺)제도나 종정 총무원장등 현행제도는 모두가 일제의 잔재들이다.

해방 후 대한민국은 새로운 기초와 질서를 마련해야 했다.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는 이 중요한 시기를 해방군이라는 미명으로

이 땅을 통치한 미군 군정청을 거쳐 초대 이승만정권을 비롯하여

20년이 넘는 세월을 기독교문화에 침식되고 길들려지고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정서 모두가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종교마저도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때 이래서는 안 된다고 분연히 일어난 2개의 대 사건이 있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라는 대원을 가지고 1947년 성철, 우봉, 보문,

자운 청담, 향곡, 월산, 등 큰 스님들이 마련한 봉암사 결사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것을 새로 만들자’ 라는 대원을 가지고

스님들의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제도들을 하나하나 바로세운 것이다. 이때 재가신도가 스님을 만나면 3배를 올리는 것이 제도화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신도와 스님이 만나면 서로 맞절을 하게 되어 있었다. 한국불교가 이나마 정비가 된 것은 이 봉암사 결사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봉암사결사는 출가불교의 이정표를 마련하는데 기여를 했을지라도 재가불교를 포함한 전체불교를 두고 보면 미흡한 결사였다.

오히려 봉암사결사가 오늘날 한국불교가 절름발이 불교로 전락하는데 그 결정적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출가불교의 우월성 재가불교의 열악성이 이때부터 등장하는 것이다. 무조건 머리만 깎으면 스님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고 머리를 가지고

재가에서 수행하는 불자는 감히 출가를 능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불교의 모든 의식은 출가스님들만 할 수가 있고 출가스님들만이 해야 하고 재가불자는 감히 범접할 수가 없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출가불교의 우월성 교만(驕慢)성 귀족(貴族)성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재가불교의 열악성 위축성 관광성 기복(祈福)성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한국불교의 고질병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비정상적 출가중심의 암(癌)적 세포들이 점점 한국불교를 잠식해 한국불교는 마침내 말기(末期)암 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도 이 심각한 말기 암을

치료하고자하는 자 없었다. 이고질병을 수술치료 할 수 있는 의사는 많아서나 비대해진 출가불교라는 환자에 위축되어 수술의 메스를 가하고자 용기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과 상부상조하며 암(癌)걸린

한국불교를 외면하고 자가들만의 이익에 안주하고 있었다.

이때 분연히 일어난 대사건이 있었다. 이때 한국불교의 암(癌)적 요인을 제거하고자 과감히 메스를 들고 나선 선지식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세제불교요. 이 선지식이 바로 목정배 박사요.

이 단체가 대한불교법사회이다.

세제불교! 세상을 다 제도하겠다는 불교이다.

세제불교! 세상의 일체중생을 다구제하겠다는 불교이다.

봉암사결사가 출가불교를 제도하겠다는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잔치라면 세제불교는 온 세상 일체중생이 함께 아울려 함께 제도하겠다는 원대한 서원의 불교이다. 봉암사 결사가 출가만을 위한 소승불교라면 세제불교는 온 세상 일체중생이 함께 아울려는 대승불교이다.

봉암사결사가 성철큰스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결사라면 세제불교는

목정배박사님의 주도로 일체중생들이 함께 봉기(蜂起)한 위대한 혁명이요. 속 시원한 쾌사(快事)요. 아름다운 거사(擧事)인 것이다.

혁명은 낡고 썩어가는 문제점투성이의 기존 질서를 뒤집어 업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혁명이 성공하기위해서는 혁명의 명분이 명확해야한다.

혁명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주체세력들을 필요로 한다. 목정배 세제불교 혁명은 성공해 가고 있다. 21년 전 대한불교법사회가 설립되고 목정배 세제불교가 고고의 함성으로 세상에 알려질 때

한국불교 출가불교는 그들만의 잔치를 향유하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 때맞추어 등장한 목정배 세제불교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세제불교 재가불교라는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일진광풍(一陣狂風)되어 한국재가불교계를 서서히 개혁의 바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재가불교계는 지난 20년간 장족(長足)의 변화를 이룩했다.

비로소 출가불교가 재가불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재가불교가 불교수행에 맞들이고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세제불교 제창(提唱)후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재가불교신행단체나

재가불교 교육기관은 이제는 넘쳐난다. 엄청난 변화이다.

목정배 세제불교는 이 새로운 변화에 확실한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이 살아가는 사바세계에는 어디든지 호사다마(好事多魔)가 있다. 어디든지 무임편승하려는 무리들이 따른다.

재가불교를 빙자해서 범죄행위에 가까운 온갖 사이비행각들이 끼어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출가불교에 비하면 아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더 늘어나기 전에 옥석(玉石)을 가려 잘라내야 한다.

이 작업은 재가불교혁명의 주체인 대한불교법사회의 새로운 과제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혁명들을 보아왔다.

성공한 혁명보다는 실패한 혁명들이 더 많은 것도 보아왔다.

혁명의 성공여부는 명분과 그 당위성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혁명주체들의 노력과 투명성에 달려있다.

실패한 혁명에는 혁명주체들의 욕망과 부정부패가 그 원인되어왔다.

세제불교가 한국불교 개혁의 혁명적 명분과 당위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현재 한국불교개혁의 원동력을 충분히 하고 있다.

한국재가불교의 선구자로서 선도자(先導者)적 역할을 당당이하고 있다.

대한불교법사회 법사들과 소속불자들은 당당해야 한다.

왜? 우리는 세제불교를 실천수행하기 때문이다.

대한불교법사회 법사들과 소속불자들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왜? 우리는 목정배라는 이 시대 최고의 선지식을 모시고 때문이다.

대한불교법사회 법사들과 소속불자들은 더 분발해야 한다.

왜? 우리는 세제불교혁명을 수행성공하여 중생과 더불어 회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제불교혁명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혁명주체가 무너지면 혁명이 실패하는 것처럼 대한불교법사회가

무너지면 세제불교혁명은 무너지고 만다.

실패한 혁명으로 뭇 사람들의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세제불교혁명은 이제 목정배박사 혼자만의 혁명이 아니다.

대한불교법사회 소속법사들과 대한불교법사회 소속불자들의 혁명이다.

또한 세제불교는 이제 대한민국 재가불교의 이정표이자 재가불자들의 희망이고 원동력이다. 이제 세제불교혁명의 바통은 목정배박사의 손을 벗어나고 있다. 그는 선두주자로서 자기 몫을 두 배 세배 충분히 다하면서 지처가고 힘들어 할지도 모른다.

이제 세제불교는 그의 제자들인 재가법사들의 몫이다.

재가법사들의 분발을 기대해본다.

이제 재가불교는 ‘재가불자의, 재가불자에 의한, 재가불자를 위한 재가불교!!!’ 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제불교의 혁명공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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