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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막 가자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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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3-17 22:45 조회5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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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막 가자는 이야기지요?

고 노무현 전직 대통령이 취임초기 검찰 권력을 내놓으면서 평검사들과의 토론에서 막 기어오르는 검사들에게 남긴 말이다.

“쇠 빠지게 열심히 일할 때는 짜더라! 욕을 해 사 터만 일 안하고

노니까 좋대요.

이 말은 대통령 퇴임 후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찾아 봉하 마을로 밀려드는 지지자들에게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남긴 말이다.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와 같은 서민이다.

바른길 정의라고 생각되면 거침없이 행동하고 말한다.

그의 직설적(直說的)인 언행은 때론 친밀감을 주기도 하지만 긍정과 지지보다는 질시(嫉視)와 거부감을 우선했다.

오랜 세월을 권위적이고 엄숙한 화법(話法)을 쓰던 제왕(帝王)과

대통령들의 언행에 익숙해온 대다수의 국민들은 어색함을 넘어서

배척(排斥)하고 부정(否定)했다.

이런 취약점은 그의 천적(天敵)인 보수언론들과 정적(政敵) 의하여

더욱더 과대 포장되어 멸시되고 천시(賤視)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격에 맞지 않게 막말을 하고 천박한 행동을 한다.” 고

사사건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공격해온 것이다.

그렇다 노무현은 우리 일반서민들처럼 막말을 한다.

바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우직하고 소탈했다.

그것이 서거 후에 물밀듯이 몰려드는 수백만 명의 엄청난 조문객을

불러 모으는 원동력이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찾아주는 서민들이다.

막말, 막사발, 막걸리는 서민들이 부담 없이 쓰고 먹는 것들이다.

옛 봉건사대주위 근성에서 보면 천박한 말이고 볼품없는 그릇이고,

영양가 없는 하찮은 먹을거리들이다.

그러나 지금 디지털시대에는 솔직한 말이고,

소박하고 담백한 그릇이고 건강 웰빙 식품이다.

불교에서는 말(言)로서 짓는 4가지 악업(惡業)을 경계(警戒)한다.

1) 망어(妄語): 거짓말을 말한다.

2) 양설(兩舌): 이래다 저래다하며 남을 이간질 하는 말이다.

3) 기어(綺語): 말은 그럴듯하게 꾸며서 하는 말이다.

4) 악구(惡口): 험한 말로서 남을 저주하는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우리 일반서민들의 막말은 어느 업(業)에

해당될까?

또 머리를 써서 원고를 만들고 밤새워가며 연습해서 애써 권위와 위엄을 갖추는 정제되고 세련된 말들은 어느 업(業)에 해당될까?

옛날 우리나라 사대부들은 생각하며 말을 한다.

“전........하....... 아니 ....... 되......... 옵 ........ 나이다.

“ 전.......하……. 지당한......... 말씀..........이옵나이다.

말 고리를 길게 빼면서 다음 말을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해야 될지 손익(損益)을 계산하는 것이다.

임금도 신하를 부를 적에

“여........바........라!............ 천천히 부르면서 손익을 계산한다.

어떤 말을 해야 책잡히지 않을까? 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옛날 글 배운 사대부들은 얻어먹기 위하여 구걸하거나 하룻밤 신세를 지기위하여 남의 집을 찾아도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천천히 소리친다.

“이.........리.......... 오........너.........라!

밥을 한술 얻어먹을 수가 있을까? 하룻밤 신세를 질수가 있을까?

하는 손익계산을 하는 것이다.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거지는 다르다.

대문을 냅다 흔들면서 고함부터 지르고 본다.

“밥 좀 주이소 야! 밥 좀 주소야!

그래야 밥을 얻어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하고 말투도 바뀐 것이다.

요즘 세상에 옛날처럼 이........리........오........너라! 나

여.......바.......라! 했다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반대로 양반 상놈 찾든 옛날 그 시절에 요즘처럼 빠른 말투로

“전하 안 됩니다. 전하 맞는 말씀입니다. 아니면 여봐라! 했다가는

경망스럽고 천박하고 못 배운 아랫것들 상놈, 천민들의 말이 되고

인간이하의 천민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부터 충청도 사람들을 양반(兩班)이라고 한다.

충청도 사람들의 말투가 느리다.

말을 천천히 생각하며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흉보기 좋아하고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옛날 말투를

그대로 사용하는 충청도 사람들을 보고 “핫바지”라고 비웃는다.

사대부(士大夫)문화가 무느진 오늘날 일반서민들의 언어문화는 빠르고

즉흥(卽興)적인 말투로 변했지만 지도층이나 고위층 언어는 더욱 정제(整齊)되고 세련된 말투로 꾸며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도 “에” 하는 감탄사를 말 첫머리나 중간에 넣어 시간과 생각의 여유를 벌거나 아니면 “본........ 인........은.......등의

화법(話法)으로 여유를 얻기도 했다.

밤새워 원고를 작성하고 힘들여 연습하고 애써 천천히 말하는 것은

모두가 여유를 가지고 자기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꾸며서 하는 말, 이 말이 기어(綺語)인 것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하는 말들은 대개가 거짓말을 수반(隨班)한다.

중생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거짓말을 전혀 안하고 살수는 없다.

정도 차이이지 약간의 거짓말은 하고 산다.

부처님도 망어(妄語)에 있어서 일상생활에서 하는 거짓말을 소(少)

망어(妄語)라고 하여 비교적 관대했다.

“상인이 손해보고 판다는 말. 노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늙은이들이 죽어야지 하는 말.

한때 우리사회에서 유행하든 3대 거짓말이다.

별다른 악의(惡意)없이 자기 입장을 대변하는 이른 말들이 소(少)망어(妄語)이다. 그러나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는 거짓말을 대(大)망어(妄語)라. 하고 절대적으로 금지(禁止)했다.

예로 들면 깨우치지 못하고도 깨우친척하는 사람을 증상만(增上慢)

이라고 하여 살생(殺生)보다도 더 큰 죄업으로 경계(警戒)시 했다.

인간은 자기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교묘히 말을 꾸며서 참말인양

포장하여 설명한다.

애써 원고를 작성하고 연습까지 해가면서 큰 망어(妄語)업(業)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한입으로 두말하고 남을 이간질 하는 양설(兩舌)도 마찬가지이고

남을 헐뜯고 남을 모함하는 악구(惡口)도 마찬가지로 꾸며가며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정제(整齊)되고 세련된 언어(言語)일수록 그 속에는 더 큰 망어(妄語), 더 큰 양설(兩舌), 더 큰 악구(惡口)가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장식되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마치 고려청자나 이조백자가 온갖 신비함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정제된 말속에는 인간의 온갖 욕망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말을 좀 다르다.

막사발이 신비함보다는 일상생활에서 부담 없는 실용적인 것처럼 막말은 인간의 욕망을 특별한 가감(加減)없이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진솔함을 가지고 있다.

막말은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우비고뇌(憂悲苦惱)의 감정을

아무른 여과(濾過)없이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말로서 그 사람의

진심(眞心)을 알 수 있다.

막말도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 감정이 있는 그대로 묻어나는 것으로

망어(妄語)와 양설(兩舌), 악구(惡口)의 업장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나 최소한 의도적으로 꾸며서 하는 말 기어(綺語)의 업장(業障)은 가볍게 벗어날 수가 있다.

노무현 전직 대통령의 사망을 두고 말들이 많다.

대다수국민들과 언론은 서거(逝去)로 표현하고 애도하고 아쉬워한다.

조문객들이 우리나라 유사(有史)이래로 최고인 600만 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모여든 일반 서민들 이란다.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안타까워하는 애석한 주검을 두고 보수(保守)

논객(論客)을 자처하는 한 늙은 기자는 서거라는 표현에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반박하고 나셨다.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는 표현이 맞다”

고 흥분하며 초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대표적인 기어이고 망어이고 양설이고 악구이다.

말과 글로 표현되는 언론 밥을 수십 년을 먹어오며 늙은 노(老)기자가

자살(自殺)을 모르고 서거(逝去)를 모를까?

의도적으로 국민적 관심사에 재를 뿌리자는 심보다.

자살(自殺), 타살(他殺), 독살(毒殺),의문사(疑問死),병사(病死), 등은

사망의 원인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서거(逝去), 붕어(崩御), 열반(涅槃), 별세(別世), 선종(善終)등은

사망의 결과를 알리는 표현 방법이다.

서민들이 사망하면 죽었다는 표현보다는 돌아가셨다. 는 표현을 쓴다.

대통령을 비롯한 높은 분들의 주검은 서거로 표현한다.

옛날 왕권시대에 임금님들의 주검은 붕어로 표현한다.

큰스님들의 주검은 열반이고

천주교 성직자들의 주검은 선종으로 표현한다.

별세는 일반인들의 주검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 노(老)기자의 표현대로라면 박정희 전(前)대통령의 주검은 타살이고 총살(銃殺)이고 저격(狙擊)이다.

고(古)육영수 여사의 주검도 같은 표현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자는 그가 써온 수많은 두 사건의 기사 중에단 한번이라도 총살이나 타살이라는 말을 쓴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이라는 말의 매체(媒體)를 빌려서 대 해서는 안 될 대(大)

망어(妄語)를 한 것이다.

자기마음에 들면 서거(逝去)이고 자기가 미운사람은 자살(自殺)이라는 이중적(二重的)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언론 문화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가장 공정해야할 언론이 자기들 입맛대로 빼고 보태고 꾸며서 보도하는 씻지 못할 크나큰 죄의 업장(業障)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본 것을 못 본척하고 보지도 않은 것을 본 것처럼 쓰고 있다.

봉하 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1000억을 들여 건축한 아방궁이라고 대서특필을 해댔다.

국정을 책임진 정당의 고위 책임자도 시가(市價)로 환산(換算) 자기 집보다도 싼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몰아세우고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사들도 이를 여과(濾過)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이모두가 말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사들이 만들어낸 죄악(罪惡)들이다.

진짜 한국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값비싼 초호화 아방궁에서 살고

있는 자기언론사 회장님 집들은 외면하고 말이다.

봉하 마을 노무현대통령 사저를 설계한 정기용 건축설계사는

“내가 설계한 사저인데 아방궁이 웬 말인가?” 억울함을 호소한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들의 보도와는 달리 고급자재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일반나무와 황토로 건축한 평범한 건축물이란다.

그것도 마을 주민들과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의 시야에 뒷산 봉하산

부엉이바위가 가리면 안 된다. 고 하는

노대통령의 배려에 따라 나지막하게 건축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아방궁의 실체가 이번 서거 사건으로 백일하에 들어났다.

“지하실에 김해시민이 다 들어가고도 남는 다고 하드니 그게 아니네!

봉하 마을 분향소에 다녀온 한 조문객의 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꾸민 말들이 전직 대통령을 죽인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경쟁적으로 최선(最先)을 다한 꾸민 말,

기어(綺語)가 전직 대통령을 주검으로 내몬 것이다.

새(鳥)를 잡기위하여 새 틀을 차려놓고 새가 그곳으로 들어가도록

새 몰이를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새를 잡으려면 새 틀을 차려놓고 새가 들어오도록 먹이로 유인하며 기다렸다가 새가 들어오며 줄을 당겨 새를 잡는다.

이번 노무현 전직대통령의 주검의 원인된 검찰수사는 누가 봐도 미리 포괄적 뇌물수수라는 죄목(罪目)의 틀 을 사전에 만들어 놓고

언론과 검찰과 일부 정치권이 담합(談合)하여 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속으로 몰아넣다가 발생한 사건이다.

오랜 검사생활을 해온 국정책임정당의 최고위 간부도

“이런 수사는 처음 봤다! 고 할 정도로 희한한 몰이 수사였다.

연일 방법과 수사내용 언론에 생중계를 계속했다.

발표하는 검찰관이 언론사 앵커보다도 더 친숙할 정도로 앵커 아닌

앵커로서의 인기를 누렸다.

그들이 그렇게도 금기시하는 확정도 안 된 피의(被疑)사실들이

확정된 범죄인양 과대포장 되어 파렴치한 시중(市中)잡범(雜犯)으로

몰아세워 그들이 차려놓은 틀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모두가 말(言)이 만들어 내는 살벌(殺伐)한 범죄이고

무서운 업장(業障)들이다.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모두가 피의사실 공포(公布)죄에 해당된다. 는 것을!

그러나 그들의 얻고자하는 허황(虛荒)된 큰 욕망이 이들의 눈과 귀를 막고 가려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범죄보다도 더 무섭고 지독한 업장(業障)을 짓고 맺어

엄청난 과보를 가져온 것이다.

이번 자살사건에는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도 지금까지 그의 전매특허처럼 해온 막말을 피하고 꾸밈말,

기어(綺語)를 했기 때문이다.

비록자신은 자신의 주장처럼 한 점의 의혹도 없이 깨끗했는지 몰라도

그의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과 측근들이 저지른 행위들이라 그들을

보호하려고 애써 말을 조심한 흔적들이 남기 때문이다.

더더욱 법률적 책임을 피할 수는 있어도 누구보다도 자존심강한 그가 도의적 책임마저 외면할리 만무했고 그 과정을 해명하느라 고뇌(苦惱)한 그의 마음이 막말이 아닌 기어(綺語)로 곳곳에서 묻어났다.

이점이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답지 못하다. 는 언론과 정적들의

평가절하와 함께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실마리가 되고 만 것이다. 이모두가 말이 가지고 있는 피해갈수 없는 탐(貪), 진(嗔), 치(痴). 의 삼독심(三毒心)이 가져온 언어의 업보(業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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