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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과 어사 박문수 탄생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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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7-29 15:37 조회6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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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과 어사 박문수 탄생설화

불교 수행은 서원의 목적에 따라 신앙하는 보살들이 다르게 나타난다.

목적에 따라 8대보살이 등장하기도하고 4대보살이 출현하기도 한다.

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들을 4대보살이라고 한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보현보살은 행원(실천)을, 관세음보살은 현세의 이익을, 지장보살은 업장(業障)을 참회하는 보살님들이시다. 보살님들은 각각 중생구제의 서원(誓願)이 다르다. 중생들도 서원의 목적에 따라 신앙하는 보살님들이 달라져야한다. 한국불교에서는 관세음보살기도와 지장보살기도가 주로 성행하고 지혜의 문수보살기도와 행원(실천)의 보현보살기도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많다. 이것은 잘못된 기도방법이다.

현세의(관음)이익도, 업장소멸(지장)참회도, 지혜로(문수)깨달아야하고, 실천(보현)해야 가능한 것이다. 4대보살 중에서도 가장 상수(上首)보살이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님이시다. 문수보살은 실존인물이라 문수사리보살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님 신앙기도로 훌륭한 자녀를 출생한 영험 담들도 많으나 문수보살님기도로 훌륭한 자녀를 출생한 영험 담들도 많다.

대표적인 영험 담이 조선조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 탄생설화이다,

박문수(朴文秀.1691~1756)는 본관이 고령(高靈)이며 도승지, 어영대장, 병조판서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박문수는 <암행어사 박문수 >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박문수는 조선 숙종 17년(1691년)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이조판서를 지낸 구당 박장원이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모두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명문 출신이다. 박문수의 부모는 늦게까지 슬하에 아이가 없어 큰 걱정이었는데 절에 가 불공을 드리면서 스님께 어떻게 하면 자식을 낳을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스님은 공덕을 많이 쌓으라 하였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공덕을 쌓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스님들께 음식공양을 많이 올리고 선행을 많이 베풀면 좋을 것이라 일러주었다. 그래서 부부는 1000일을 선행을 베풀고 3년 동안 스님들께 음식공양을 올리기로 결심하고 장날마다 장터에 나온 스님을 집으로 모셔다가 극진하게 식사를 대접해 올렸다.

그렇게 꾸준히 하기를 어언간 3년! 3년이라는 세월이 번개같이 지나갔다.

드디어 3년을 채우는 장날이 되어 장터에 나갔더니 그날따라 도통 스님이 보이지를 않아 하루 종일 기다렸다. 장이 파하고 저녁 무렵 드디어 스님 한 분이 나타났는데, 하필이면 문둥병이 심한 스님이었다. 순간 부부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3년 동안 쌓은 공덕이 아까워 결국 그 스님을 모시고 집으로 갔다. 스님이 대청을 건너 안방으로 들어가는 걸음마다 참으로 보기 역겨웠다. 피고름 발자국이 났고 악취가 진동했다. 식사를 하는 모습 역시 차마 눈뜨고는 바라보기 힘들 지경이었으나 부부는 전혀 내색 한번하지 않고 꾹꾹 참고 지극정성으로 공양을 올렸다.

드디어 스님께서 식사를 다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님, 음식이 맘에 드셨는지요?"

부부의 안쓰러운 물음에 스님은 문드러진 얼굴에 인자한 미소와 함께 자비의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안타는 듯 덤덤하게 답해왔다.

"예,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스님이 대문을 나설 때 부부는 문득 걱정이 됐다. 스님이 혹시 다른 문둥이들한테 부부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이 소문을 내서 다른 문둥이들이 몰려들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된 것이다.

"스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스님이 무슨 짐작이나 하고 있는 듯 말했다.

"말씀해 보세요! 무엇인지요?"

"다른 데 가셔서 저희 집에서 식사하셨다는 말씀은 절대로 안하셨으면 해서요." 그러자 그 스님이 말했다.

"그러지요. 저도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다른 데 가셔서 이 집에 문수보살이 왔었다는 말씀을 절대로 하지 말아 주세요." 말을 마친 스님은 대문을 나서자마자 구름을 타고 홀연히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닌가............ 3년 공덕의 마지막을 제대로 회향하지 못했지만 3년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총명한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부인은 아이를 가져 마침내 아들을 낳았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낳은 아이라 하여 '문수'라는 이름을 지었으나 성인(보살聖人)의 이름을 그대로 쓸 수가 없어 뒤 글자를 '빼어날 수(秀)'자로 하였다고 한다. 박문수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활달한데다 기지와 유머가 풍부했다. 과거시험에 장원 급제한 박문수는 워낙 강직한 성격으로 바른말을 잘해 대중의 절대적인 인기를 한 몸에다 얻는다. 그러나 박문수는 정승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의 벼슬길에서는 기복이 많았다. 너무 흑백이 분명하고 타협을 모르는 올곧은 성격 탓이었다. 그가 죽자 영조는 시호를 내리도록 했다. 조정에서는 그의 바른말에 얼마나 진저리가 났던지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해 ‘바른말로 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직간공(直諫公) 으로 지어 올렸다. 그를 아꼈던 영조가 이를 보고 껄껄 웃으며 충헌(忠憲)으로 고쳐 시호를 내렸다. 박문수는 나이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타고난 총명함과 뛰어난 직관력으로 조선팔도 방방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서민들의 애환(哀歡)어린 온갖 민원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줌으로서 영조대왕의 절대적 신임(信任)과 백성들의 인기와 지지를 몽땅 다 받았으면서도 정승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분명한 흑백논리와 타협을 모르는 성격 때문일 것이다. 이는 과보(果報) 때문이다. 1000일 선행을 닦고 3년 세월을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도 마지막 날 스님과 문둥병스님을 마음속으로 분별한 과보를 받은 것이다. 순간 언짢음이 과보로 나타난 것이다. 직설(直說)적으로 바른말하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은 ‘스님이 혹시 다른 문둥이들한테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소문을 내서 다른 문둥이들이 몰려들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과보가 된 것이다. 마음속에 묻어두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린 것이다.

"다른 데 가셔서 저희 집에서 식사하셨다는 말씀은 절대로 안하셨으면 해서요." 이 한마디의 과보를 톡톡히 받은 것이다. 3년 공덕의 마무리를 제대로 회향하지 못하고 말 한 마디 잘못해서 그만 눈앞의 무량대복을 발로 거둬 차버린 격이 되고만 것이다. 그렇게 복을 차버리고도 그 정도 인물이 나왔으니 안 그랬으면 얼마나 훌륭한 인물이 나왔겠는가?

이왕 참는 거 끝까지 참아야 한다. 참고 견디는 인욕(忍辱)도 기도이다.

“암행어사 출두야!!!!!!!!” 한 맺힌 중생들의 절규인지 모른다.

부패한 사회부조리 척결을 위해 목이 터져라 외쳐보고 싶은 이름이다.

그러나 또 다른 업장이 될지도 모른다. 불교는 인과응보임을 알아야한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는 신(信)해(解)행(行)증(證)을 알아야 한다. 믿음(信)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解) 꾸준한 실천(行) 그리고 실제로 내가 체험해야 된다(證). 내 것으로 만들어 가야한다. 문수의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곧 문수이고 문수가 곧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무 문수보살! 나무 문수보살! 나무 문수사리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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